"벌써 보따리 몇 번이나 쌌지. 마음으로는 평생 쌌어."

언제부터였을까? 섬에서 점점 해녀를 찾기 힘들어진게. 바다로 나가 생선을 잡아 오는 어부의 수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해녀들.
만나기 힘든 소수의 해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했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지금까지 그 일을 해오면서
어떤 세월을 거쳤는지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어 여서도에 단 두 명 남은 해녀 어머니 중 한 분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물질하는 삶 ㅣ 해녀 한수엽



안녕하세요, 어머니.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원래는 해녀고, 일이 없을 때는 민박을 하고 사는 한수엽이라고 해. 내가 얘기해줄 게 있으려나 모르겠어.
뭐 그래도 여기서 평생 살았으니까 말해줄 수 있는 건 다 말해줄게.


감사해요. 어머니는 언제부터 물질을 시작하셨나요?

언제 시작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아. 여기서 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했던 것 같아.
학교 다녀오면 보자기 내려놓고 친구들이랑 바다에 나가서 물질하러 가고 그랬어.


보통 물질은 어디로 나가시나요?

사방팡방 다 다녔지. 여기서 바로 바다를 나갈 수는 없어서 배 타고 여서도에 있는 갯바위 곳곳을 다 돌아.
아리끝, 간댓등, 홋개, 어방리 작은개처럼 '개'가 붙은 데는 다 갯바위여. 서른 군데가 넘는데 그때그때 나는 곳이 다 달라.
어떤 데는 미역이 많이 나오고 어떤 데는 가사리가 많이 나오고. 그래서 그걸 세 반으로 나눠서 1년 농사 거두는 것처럼 캐러 다녀.


물질하면 어떤 것들이 많이 잡혀요?

소라가 제일 많이 잡히고 전복, 헤삼, 미역, 운 좋으면 문어도 잡혀. 여름부터 가을쯤엔 보통 소라 잡으러 가.
근데 민박집에서 밥차려야 해서 못 나갈 때가 많아. 그리고 가사리라고 진포, 병포를 캐서 일본에 수출해. kg당 3~5만 원 정도 받아.
돈이 꽤 벌리는 편이지. 보통 동쪽이 제일 빨리 나고, 서쪽이 조금 늦게까지 있어. 근데 어디가 많이 난다는 건 그때그때 달라.
해봐야 알아. 질이 좋긴 동쪽이 나아. 물이 세고 깊어서 캐기는 힘든데 그만큼 좋아.
여서리에 합동반이 있어서 세 반으로 나눠서 미역을 채취해. 나 혼자 베서 여덟, 아홉 명이 다 나눠서 가지고 그래.


미역은 얼마나 잡으시는 거예요?

7시간 정도 작업해서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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