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건 없어도, 우리가 이런 몸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숙소로 돌아가는 어둑한 저녁, 부둣가에서 짐을 한 꾸러미씩 들고 오는 노부부가 눈에 띄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이 여서도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음날 집을 방문해 잡초를 뽑으며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전달하는 삶 ㅣ 보급 우체부 김은자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남편과 우체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김은자라고 합니다.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2005년인가 2007년도부터 시작했어요.


그전엔 누가 우편을 배달해줬어요?

다른 사람이 해줬어요.
청산에서 우편을 배달하는 사람이 여서도까지 와서 다른 사람한테 전달해주는 식으로 일을 했는데,
그 사람이 사정이 생겨서 못하게 되고 우리가 이어받게 됐어요.


그럼 어머니 아버지는 우체부 하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어요?

우리 둘 다 여기서 나고 자랐어요.
남편은 눈이 불편하고, 나는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까 활동력도 없고
자식들 낳아서 키워가면서 기초생활보조금을 받으면서 생활했어요.
이제는 자식들이 다 육지 나가서 돈 벌고 사니까 받진 않지만요.
가끔 산 위에 나무 패와서 불 때고, 나물도 캐와서 삶아먹고 그렇게 살았어요.

그때는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밭에서 나는 작물 탈곡도 하고, 산에서 들고 오는 모든 짐을 머리에 이고 다녔어요.
보릿고개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에요.
이제는 밭에 나무나 다른 게 나서 보이지 않지만 거기서 농사를 지어다 살았어요.
다랭이 밭이라고 하죠? 다 직접 만들어서 먹고 어렵게 살았죠.
그때는 지붕도 지금 같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밤새 새끼줄 꼬아서 초가집을 만들어 살았어요.
그러다 연탄이 들어어고, 조금 있다가는 '새마을 가꾸기'라고 해서 보일러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여서리가 조금씩 발전했어요. 그전엔 어렵고 힘들게 살았죠.


두 분은 결혼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36년 됐어요. 그 당시에 우리 집이 1남 4녀인데 제가 제일 막둥이였어요.
근데 사는 게 어렵다보니까 오빠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한 식구라도 덜어주면 살만 하겠다 싶어서 남편을 소개받아서 만났어요.
그렇게 연애도 좀 하다 결혼하게 됐죠.
그때는 어떻게 보면 철부지였던 것 같아요.
뭐가 뭔지 모를 때 결혼해서 같이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그럼 지금 우체부 일을 하는건 어떠세요?

보람 있어요. 진짜로.


어떤 부분에서 보람을 느끼시나요?

활동력이 있으니까요. 조용한 섬에서 오래 지내면서 뭘 보고 느끼겠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좋죠. 이렇게 불편한 몸이라도 내가 직접 움직여서 일을 할 수 있구나, 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왼팔이 잘 움직이지 않는데, 우체부 일을 하면서 조금씩 움직이니까 훨씬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아저씨도 눈이 불편해서 하고 싶지 않다고 할 때가 있는데,
운동도 하고 그 안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으니까 계속 데리고 나가요.
'가진 건 없어도, 우리가 이런 몸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싶어 사는 데 힘이 돼요.



일이 어머니께 활력소가 되는 거네요. 그럼 배송은 언제 하시나요?

일단 배가 들어와야 해요. 보통 아침 10시에 들어오는데 배송하는 시간이 안 맞아서
저녁 6시 배에 물건이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요.
 날도 어두워지고 짐도 꽤 무거운데 그날 다 배달을 해야 하니까 피곤할 때가 있죠.


힘드실 것 같아요. 주로 어떤 우편물이 배송돼요?

전기세, 자동차세 같은 돈 내야 하는게 많이 와요. 근데 그것도 요즘은 인터넷으로 배달이 되잖아요.
그래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 편이에요. 맨 처음에 할 때만 해도 신문 같은 것도 많이 오고, 전화세, 공과금도 많이 왔죠.
이 마을에 50가구가 살았는데 다 돌려야 하니까 굉장히 바빴는데 많이 달라졌어요. 사실 그때 좀 힘들었어요.
그래도 우리 아저씨가 머리가 좋아서 집마다 전화로 돈 내야 하는 것들은 자동납부로 바꿔줬어요.


사람이 많이 살 때는 편지 같은 게 자주 왔나요?

그럼요. 한 5년 전까지도 꽤 많이 왔는데, 조금씩 발전해가면서 전화나 문자로 하니까 줄어들더라고요.
그때는 인터넷 같은게 없으니까 편지도 많이 하더라고요.


우체부 일을 하시면서 어려운 일은 없나요?

그전에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지금 거의 없긴 해요. 가끔 소포 같은 게 힘들어요.
우체국이 아니라 다른 택배사에서 오는 그런 소포들이 무거운 게 좀 많아요.
근데 여서리가 다 오르막이잖아요. 그걸 지고 올라가야 하는데 그럴 때 많이 힘들죠.


힘에 부치시겠어요. 그래도 우체부 일을 계속하실 예정인가요?

하는 데까진 해야죠. 힘들 때도 있긴 한데 보람도 있으니까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한때 많이 지쳤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신앙에 기대서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았죠.


아버님이랑 함께 일 하는 건 어떠세요?

좋죠.
그 사람이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제가 길을 안내해주고, 저는 다리가 불편하니까 남편이 무거운 걸 들어주는 일을 해요.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고 있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계시네요!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여서도에 살면서 좋다고 느끼는 점이 무엇인가요?

가정사나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준다는 점이요.
어려운 일이 있다든가 그럼 같이 모여서 도와주고 그래요. 이웃 간에 정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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