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바다로 나갈 방법이 없다는 게 더 두려웠어."

가거도에서 섬의 정의를 다시금 곱씹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
망망대해로부터 이는 바람이 사정없이 들이닥치는 곳. 섬이란 그런 곳이었다.
시야를 가리는 큰 건물이 없어서일까, 가거도에서 시선의 끝은 항상 바다였다.
이따금 바다 한복판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바다가 삶의 터전이자 곧 삶의 전부였을 섬사람들.
매일 다른 얼굴의 바다를 마주하며 지내온 섬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일명 '목포룩'으로 잔뜩 멋을 낸 조사실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배 위에서 바다를 지위했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드문드문 그려졌다.


바다와 함께한 삶 ㅣ 조사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어릴 적, 아버지 따라 배 타기 시작한 것이 벌써 수십 년이 지났네. 오늘도 새벽에 배 타고 나갔다 왔어.
아, 내 이름? 조사실이야. 나이는 43년 양띠.

마을에서 오래도록 뱃일을 해오신 분을 소개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할아버지를 추천해주셨어요. 
언제쯤 배를 타시기 시작했나요?
나보다 더 오래 탄 사람도 있을텐데….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 배를 타긴 했는데, 정식으로 배를 몬 것은 열여덟 살때야.
'배웠다'기보다는 자연스레 터득했다고 보는 게 맞아. 그때 감성돔을 낚았거든.
지금이야 낚싯대를 이용하지만, 그때는 감성돔도 그물로 낚았어. 게다가 목선(木船)이라 노를 젓는 선원도 필요했지.
한 5명 정도 인원을 꾸려서 바다에 나갔던 것 같아.

와, 노를 저으며 바다에 나갔다니. 굉장히 먼 옛날처럼 느껴지네요!
옛날이야기 맞지 뭐.(웃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노를 저었어. 그때 가거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노를 잘 저을 거야.
그렇게 바다로 나가면 갯바위에 내려서 홍합도 캐고, 미역도 벴지. 딱히 선원 제한도 없던 것 같아.
열 명이고 열다섯이고 전부 배에 탔어. 누구는 노를 젓고, 누구는 그물을 올리고 그랬지.

배를 타신 지 거의 60년 가까이 되셨잖아요. 
이렇게 오랫동안 바다에 나가다 보면 날씨를 예측하는 요령이 생길 것 같아요.
뱃사람들은 대개 구름이나 바람으로 날씨를 내다봐. 음, 겨울에 갈매기가 모여 날면 날이 꼭 궂었어.
여기 말로는 '노새바람(높새바람)'이라고 하는데, 북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태풍이 불었어.
예전엔 '태풍'이라는 말도 없었어. '놀'이 온다고 했지.



가거도 바다는 어종이 풍부하다고 들었어요. 계절마다 잡히는 고기가 천지 차이일 것 같은데요. 
가거도 어부의 사계절은 어떻게 흘러가나요?
우선 미역부터 시작해. 봄에 하는 미역 작업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 참여하거든.
미역은 종류가 둘로 나뉘는데, 음력 2월에 채취를 시작하는 난미역이랑 음력 5월에 채취하는 물미역이 있어.
일찍 채취하는 난미역이 더 부드럽고 맛있지. 여름에는 멸치야. 요새는 멸치가 가장 값이 좋더라고.
감성돔은 음력 10월에 시작해서 설이 있는 2월까지 해. 가거도는 양식장이 없거든.
굳이 양식할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양식장을 지으면 바람 때문에 다 망가질 거야.

가거도는 바람이 세서 예전에 방파제도 무너졌다고 하던데요. 풍랑이 세다 보니 뱃일할 때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뱃일하니까 여기저기서 지냈거든. 인천에도 살고 연평도에서도 살아 봤어.
목포부터 시작해서 군산, 인천을 중선배를 타며 돌기도 했지.
다른 바다에 다녀보니까 확실히 가거도가 풍랑이 세다는 걸 알겠더라고.
풍랑이 세면 괴기가 그 파도를 이겨내려고 살이 단단해져서 맛이 좋거든.
그래서 괴기 낚는 맛이 나긴 하지만 그만큼 어렵기도 하지.



풍파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신 적은 없나요?
풍파 때문에 배가 부서지는 일은 허다했어. 내가 50살 때, 큰 배를 빌린 적이 있거든.
뱃일 마치고 돌아오는데 아주 거센 바람을 만난 거야. 배가 깨질 정도였지. 배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기까지 했으니까.
그때 주변에 중국 어선이 있었거든. 그 중국 배가 가까이 오더니 구명정을 떨어뜨리더라고.
그러곤 우리 선원들을 구해줬어. 중국인들이 자기 옷을 벗고 우리에게 입혀 줬거든.
그때부터 나는 평생 중국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며 살아. 그때 그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랑 선원들은 전부 죽었을지도 몰라. 마을 사람들이 고맙다고 중국인들에게 라면을 삶아 대접하고 그랬어.

겨울이면 중국 어선들이 가거도 근처에 많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들이 가거도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준 일화도 있었군요. 
바다가 생명을 위협한 이후, 다시 바다로 나서는 일이 두렵진 않으셨어요?
바다로 나가는 일보다는, 더는 바다로 나갈 방법이 없다는 게 더 두려웠어.
배를 타는 것은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거든. 풍파에 배가 부서지니까 배를 타고 싶어도 못 타잖아.
할 줄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인데 말이야. 직접 배를 몰았던지라 남의 배에 선원으로 일하는 것은 못 하겠더라고.
어쩌겠어. 집과 땅을 팔면서 다시 뱃일을 시작했지.
나중엔 뱃일 덕분에 다시 집과 땅을 샀고.(웃음) 이젠 나이가 차니까 배는 아들이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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